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쩌둥/관련 도서 (문단 편집) === [[프랑크 디쾨터]], 『인민 3부작』 === 2010년대 들어서는 홍콩 대학 교수 프랑크 디쾨터는 기존의 중국사 내러티브가 신화라고 비판한다. 그 내러티브는 '아편전쟁 및 여러 가지 외세의 칩입과 청나라 지배층의 무능으로 인하여 청나라 말 혼란이 오고, 이를 신해혁명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나중에는 군벌 시대가 오며, 장제스가 이를 일시적으로나마 통합했으나, 완벽하게 군벌들 및 공산당을 통합하지는 못하여 혼란이 지속되었고, 중일전쟁 및 2차 국공내전 이후 공산당이 신중국을 설립한다. 마오의 대약진과 문혁의 실책이 있었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해 중국은 경제적으로 발전했다'는 내러티브이다.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역사학계에서나 정치학계에서나 경제학계에서나 대중적으로나 많이 이야기가 되는 내러티브다. 디쾨터는, 아편은 오히려 중국에 도움이 되었으며, 장제스가 있던 중화민국 시기는 황금기였고, 대약진으로 인한 기근은 "실책"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학살"이며, 진정한 경제개혁의 설계자는 덩샤오핑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다.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은 그 중 1949년부터 1976년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1부 [[국공내전|해방]]의 비극, 2부 [[대약진 운동|마오의 대기근]]을 시작으로 현재 3부 문화대혁명까지 나와 있다. 해금된 기밀 문서들을 바탕으로 마오 시대에 자행되었던 국가 권력의 악행에 대해서 실증적이면서 노골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2016년 가을 1부 해방의 비극이 정발되었고, 2017년 4월 마오의 대기근이, 동년 6월 문화 대혁명이 정발되었다. 원래 2016년까지 3부작 전부를 정발한다 했는데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미뤄졌다. 디쾨터는 마오쩌둥에 대한 비판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을 기본으로 깔고 연구, 집필했다. 소위 그 시대를 살았던 민중의 1차적 증언이라는 부분도 망명객 로버트 로의 증언을 비롯한 편향된 취사 선택이 많다. 그리고 중화민국 시기가 분명 재평가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청 말과 중공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 시각을 깔고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디쾨터의 삼부작이 언어적 접근성과 중공 당국에 의한 사료 열람의 제한 같은 한계에 시달리는 서구 학계 기준에서는 치밀한 1차 사료 조사를 통해 집필된 역사서이다. 하지만 새롭게 마오쩌둥의 체제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도출했다거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기 보다는 일종의 [[고문 포르노]]를 폭로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에 자료 수집이 아까운 정도이다. 호평하는 쪽에서는 그래도 마오쩌둥 체제의 악독함에 부정하는 자들에 대한 '최후의 못'이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지만, 학계에서는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들 중 몇은 장융의 마오와 수준이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는데, 크게 보아 디쾨터가 제시한 통계가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과, 그가 [[문맥을 무시한 인용]]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디쾨터가 문서를 잘못 인용하고, 독자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한국어로 번역된 도서 중에서는 이 시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1차 사료들에 대한 [[문맥을 무시한 인용]]이 있는 문제적인 저작이기는 하지만, 이 나무위키만 해도 디쾨터 책을 장융의 책과 함께 참고도서로 사용한 문서가 많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